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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현대 사회에서 인터넷 접속은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생존과 밀접한 사회적 기본권에 해당한다. 온라인으로 구직 활동을 하고, 행정서비스를 이용하고, 병원을 예약하고, 가족과 연락하는 일상적인 행위들은 모두 디지털 접근성(digital accessibility)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대한민국에도 이 기본권에서 소외된 사람들이 존재한다. 대표적인 이들이 노숙인, 이주민, 난민 등 법적·경제적 취약계층이다.

이들은 대부분 고정된 거주지나 정기적인 통신 수단이 없기 때문에, 통신요금제를 유지하기 어렵고, 개인 스마트폰조차 없는 경우도 많다. 또한 언어 장벽, 제도 이해 부족, 경제적 제약으로 인해 공공시설이나 복지센터의 와이파이 사용조차 접근 자체가 제한되기도 한다. 특히 노숙인의 경우, 배터리 충전이나 기기 보관 문제로 스마트폰 유지 자체가 불가능한 경우가 많고, 이주민은 본인의 이름으로 된 통신서비스 가입이 어려운 구조적 장애를 겪는다.

이러한 현실에서 공공 와이파이(Public Wi-Fi)는 사실상 이들에게 마지막 연결망 역할을 하고 있다. 언제든 휴대기기를 들고 접속할 수 있는 무선 인터넷은 정보 접근권의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이주민은 본국 가족과 소통하고, 노숙인은 취업 정보를 검색하며, 난민은 정부 기관과의 소통 채널을 확보할 수 있다. 따라서 공공 와이파이는 단순한 무료 인터넷 서비스가 아닌, 디지털 권리를 보장하는 ‘사회적 기반시설’로 재조명될 필요가 있다.

 

공공 와이파이의 사회적 역할

공공 와이파이와 정보 접근권의 상관관계

정보 접근권(right to access information)은 유엔이 제시한 디지털 인권의 핵심 구성요소 중 하나이며, 모든 사람은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한국에서도 정부는 디지털 포용 정책을 통해 정보취약계층을 포괄하려는 다양한 시도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에는 여전히 접속 주체의 사회경제적 조건에 따른 디지털 불평등이 존재한다. 특히 노숙인과 이주민은 ‘공공 와이파이를 찾을 수 있는가’, ‘그 위치를 아는가’,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극복하고 사용하는가’라는 물리적·인지적 장벽을 동시에 마주하고 있다.

예컨대, 한 서울시 노숙인 자활센터에 따르면, 시설 내 와이파이가 존재해도 사용자가 SSID를 인식하거나 설정법을 이해하지 못해 사용을 포기하는 사례가 빈번하며, 도움을 요청할 채널도 미비한 실정이다. 이주민의 경우, 공공 와이파이 포털이 한글로만 제공되어 접속 과정에서 언어 장벽에 부딪히는 문제가 지적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공공 와이파이는 1회 인증 후 30분~1시간 제한 시간 설정이 되어 있어, 장시간 접속이 필요한 업무나 학습에는 적합하지 않다는 평가도 나온다.

이러한 제약을 극복하고 공공 와이파이가 진정한 사회적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단순한 ‘수량 확대’가 아닌 ‘취약계층 접근을 고려한 설계’가 필요하다. 예컨대, 홈리스 밀집 지역, 이주민 노동자 숙소 근처, 쉼터, NGO 사무소 등 실제 사용자가 존재하는 곳에 설치를 확대하고, 다국어 접속 안내, 저사양 기기 최적화, 장시간 사용 가능 설정 등의 기능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외 사례로 본 공공 와이파이의 사회적 연계 효과

해외에서는 공공 와이파이가 단순한 통신 인프라를 넘어 복지 서비스의 일부로 자리 잡은 사례가 다수 존재한다. 대표적으로 미국 뉴욕시는 2015년부터 LinkNYC 프로젝트를 통해, 노숙인이 자주 찾는 공원, 쉼터, 지하철역 출입구 등에 초고속 무료 와이파이 키오스크를 설치하였다. 해당 키오스크는 와이파이뿐 아니라 무료 충전, 긴급전화, 정부 정보 안내 기능도 함께 탑재되어 있어 노숙인의 사회 참여와 정보 접근을 동시에 가능케 했다.

핀란드 헬싱키시는 이주민 대상 디지털 포용 전략의 일환으로, 공공 와이파이 포털에 5개 언어(핀란드어, 영어, 아랍어, 러시아어, 소말리어)를 지원하고 있으며, 이주민 커뮤니티에 배포되는 모바일 리플렛에 공공 와이파이 지도를 삽입하는 등 현실적인 접근성을 강화했다. 덕분에 핀란드 내 이주민 커뮤니티는 자국 뉴스, 온라인 학습, 복지 정보에 더 용이하게 접근할 수 있게 되었으며, 지역사회 통합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를 받는다.

한국 역시 이와 같은 복지-통신 융합 정책이 절실하다. 단순히 와이파이 안테나를 설치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이용 주체를 명확히 고려한 접근 설계, 다문화·다언어 환경에 적합한 UI 개선, 그리고 공공기관과 NGO 간 협업 체계 구축 등을 통해 와이파이를 ‘복지 기반 인프라’로 업그레이드하는 노력이 필요하다.

공공 와이파이의 재정의

결론적으로 공공 와이파이는 더 이상 단순한 통신 기술이 아니다. 특히 디지털 사회의 정보 빈곤층에게는 인터넷 접속이 곧 생존, 자립, 사회 참여의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정보 접근의 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하는 것은 헌법이 보장하는 평등권, 복지권, 표현의 자유와도 직결되며, 이는 기술 인프라가 복지 인프라로 전환되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정부 차원의 디지털 인권 정책에 공공 와이파이 설계 원칙을 포함시키는 것이다. 즉, ‘어디에 설치할 것인가’뿐 아니라 ‘누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선행되어야 한다. 둘째, 공공 와이파이 운영자 교육과 서비스 매뉴얼에 사회적 약자 대응 절차를 포함하고, 현장에서 실질적인 도움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셋째, 기존의 공공 와이파이 평가 기준에 ‘사회적 효용성’ 항목을 신설해 단순 접속 건수 외에도 실제로 어떤 계층에게 얼마만큼의 도움을 주었는지를 정량적으로 측정하는 방식이 도입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공공 와이파이는 주로 ‘도시 인프라’나 ‘관광 편의’ 측면에서만 조명되어 왔다. 그러나 앞으로는 노숙인, 이주민, 디지털 약자와 같은 ‘보이지 않던 사용자’를 위한 사회적 연결망으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다. 공공 와이파이를 통해 정보 격차를 줄이고, 소외된 이들의 사회 참여를 지원하는 진정한 디지털 복지국가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은, 지금 우리가 와이파이를 누구를 위해,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를 다시 묻는 데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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