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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 접근권과 공공 와이파이의 사회적 책무

오늘날 정보는 단순한 편의가 아니라 삶의 기본 조건 중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특히 정부와 지자체는 디지털 포용 정책을 통해 모든 국민이 동등하게 정보에 접근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공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 보장은 복지와 인권의 핵심으로, 단지 보조기기를 지원하는 수준을 넘어서 사회 인프라 자체가 누구에게나 접근 가능해야 한다는 설계 철학으로 진화해야 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 와이파이는 디지털 접근권을 실현하는 핵심 물리적 인프라로 자리 잡고 있으며, 장애인들에게는 특히 중요하다. 예를 들어 시각 장애인은 음성 안내 서비스, 청각 장애인은 문자 기반 응급 시스템, 지체 장애인은 비대면 공공 민원 처리 등을 통해 온라인 정보와 서비스에 의존하는 비중이 매우 크다. 이때 공공 와이파이는 데이터 요금 부담 없이 안정적 통신을 가능케 하는 유일한 수단이기도 하다.

하지만 현실적으로는 장애인의 실제 사용 행태와 요구를 반영한 공공 와이파이 설계 기준이 부재하거나 미비하다. 이는 단순히 접근성의 문제를 넘어, 장애인을 위한 디지털 사회 참여 자체를 가로막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지금이야말로 “공공 와이파이는 장애인을 얼마나 고려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을 제기하고, 설계 기준의 존재 여부와 실효성을 진지하게 점검해야 할 시점이다.

 

장애인을 위한 공공 와이파이

현행 공공 와이파이 설계 기준에서 장애인 접근성

한국의 공공 와이파이 구축 사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행정안전부, 각 지자체가 협력하여 추진되고 있으며, 일부 사업에서는 ‘공공장소 접근성’과 관련한 일반적인 고려가 포함된다. 예를 들어, 지하철 역사, 시청, 공원, 도서관, 복지관 등 다수가 이용하는 장소에 설치를 우선하며, 배리어프리(barrier-free) 관점에서의 설비 배치를 시도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서 말하는 접근성은 물리적 접근 중심(이동 동선)에 그칠 뿐, 디지털 또는 기술적 접근성(접속 용이성, 사용자 인터페이스, 인증 절차의 쉬움 등)은 상대적으로 간과되어 있다.

현행 설계 기준에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존재한다:

음성 기반 인증·안내 시스템 미비

시각 장애인이 접속할 때 필요한 음성 안내 기능이 제공되지 않거나, 일부 지역에서는 포털 화면 접근조차 불가능하다.

단계가 많은 인증 절차

휠체어 이용자, 지체 장애인이 스마트폰 터치를 반복해야 하는 구조는 불편함을 가중시킨다.

약한 신호 범위

실내 일부 지점 또는 유휴 공간에서 와이파이 신호가 약해, 그 자리에 머무는 사용자(예: 휠체어 사용자)가 원활히 접속하지 못한다.

이용 가이드 정보 부재

공공 와이파이 접속 방법, 위치 정보, 도움 받을 수 있는 채널 등에 대한 접근성 기반 설명 자료 부족.

2023년 개정된 「장애인 차별금지 및 권리구제 등에 관한 법률」에서는 디지털 접근성 확보 의무가 공공기관에 강화되었고, ‘정보통신 접근성 지침’도 따로 마련되어 있으나, 이는 웹사이트, 모바일 앱, 전자 문서에 한정될 뿐, 물리적 네트워크 인프라—즉 와이파이 설계에 대한 구체적인 기술 지침은 사실상 부재한 상태다.

장애인 친화적 공공 와이파이를 위한 개선 방향

장애인을 위한 공공 와이파이 설계는 단순한 기술적 개선이 아니라, 사회적 정의 실현의 일환으로 접근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다음과 같은 기술·정책적 방향이 제안된다.

접속 절차의 단순화 및 음성 지원 강화

공공 와이파이에 자동 접속 기능, 음성 안내 기반 인증 페이지 제공, UI 글자 크기 조절 및 고대비 모드 지원 등이 기본 탑재되어야 한다. 특히 안드로이드, iOS 내 보조기능과 호환 가능한 인증 UI 설계가 이루어져야 하며, 화면 리더(Screen Reader) 사용 시 접근 가능하도록 HTML의 접근성 속성 준수(WAI-ARIA)가 필수다.

와이파이 설치 위치의 공간 설계 기준 도입

예를 들어, 휠체어 사용자나 보행 보조기기를 사용하는 사람도 신호 강한 지점에 머물 수 있도록 AP 배치 시 수신 공간의 높이와 범위를 고려해야 하며, 와이파이 안내 스티커나 디지털 정보도 점자 또는 음성 인식 기능을 병행할 수 있어야 한다.

와이파이 위치 정보 및 사용 안내의 접근성 강화

전국의 공공 와이파이 정보를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나 공공 데이터 포털에서도 음성 안내, 시각 디자인 개선, 외국어 및 쉬운 설명 버전(Easy Read) 제공 등을 강화해 장애인도 사전에 위치와 사용 방법을 숙지할 수 있는 환경을 제공해야 한다.

법제도 내 ‘와이파이 접근성’의 명문화

현재는 디지털 정보 접근성을 다룬 법률들이 와이파이 인프라를 명확히 포함하고 있지 않다. 장애인복지법, 정보화촉진법, 공공데이터법 등 관련 법령에 ‘공공 통신 인프라의 접근성 기준 마련’ 조항을 삽입하여, 향후 와이파이 설치 시 장애인 이용 가능성 검토를 의무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디지털 포용의 관점에서 바라본 공공 와이파이의 미래

지금까지 공공 와이파이는 '누구나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인터넷'이라는 인식 속에서 확산되어 왔다. 그러나 ‘누구나’의 범주에 실질적으로 장애인이 포함되었는지에 대한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디지털 포용(Digital Inclusion)이라는 국가 전략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단지 장비 수량을 늘리는 것을 넘어, 사회적 약자들이 체감할 수 있는 품질과 접근성을 보장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장애인을 위한 공공 와이파이 설계는 단지 복지의 영역이 아니라, 스마트시티, 유니버설 디자인, 데이터 기반 행정의 정당성을 강화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장애인 전용 택시 호출 앱, 음성 기반 내비게이션, 비대면 병원 진료 플랫폼 등과 연계될 경우, 공공 와이파이는 모바일 복지 플랫폼의 핵심 기반이 된다.

나아가, 이러한 설계 기준은 고령자, 비문해자, 외국인 등 다른 정보 취약계층에도 긍정적인 파급 효과를 가져온다. 장애인을 위한 설계는 결국 모두를 위한 설계로 이어지는 ‘보편적 접근성’의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결국 우리는 이제 공공 와이파이 설치를 단지 ‘기계적 확장’이 아닌, 사람 중심 설계와 사회적 약자 배려를 전제로 한 정책 설계로 재정의해야 한다. 장애인의 정보 접근권을 실질적으로 보장하는 공공 와이파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디지털 민주주의의 근간이자, 기술이 사회적 정의를 실현하는 방식의 모범 사례가 될 수 있다.

국내 정책 실천 사례와 시사점

최근 들어 일부 지자체와 공공기관은 장애인 접근성을 고려한 공공 와이파이 개선 시범사업을 시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2023년부터 ‘디지털 약자와의 동행’ 정책의 일환으로 복지관, 장애인 편의시설 등지에 설치된 와이파이의 접근성을 재점검하고, 장애인 이용자 대상 실사용 테스트를 병행해 개선방안을 모색했다. 이 과정에서 음성 안내 접속, 단축 URL 인증 방식, 점자 와이파이 안내판 설치 등이 도입되었으며, 실제 시각 장애인 이용자들로부터 “기존보다 접속이 빠르고 안내가 명확해졌다”는 긍정적인 피드백을 얻기도 했다.

또한 경기도 시흥시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공공와이파이 기반 문자 대화 지원 서비스를 시범적으로 도입했으며, 부산시 역시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공공 와이파이 사용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한 바 있다. 이러한 시도들은 아직 전국적인 표준은 아니지만, 분명한 실천적 성과로 평가되며, 향후 중앙정부 차원의 가이드라인 수립에 있어 지역 사례 기반의 상향식 정책 개발이 유의미하다는 점을 시사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정책이 일회성 이벤트가 아니라 전국적 인프라 정책에 내재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해외 사례와의 비교를 통한 방향 설정

해외의 경우, 이미 공공 통신 인프라 접근성에 대한 법적 기준과 실행 지침을 마련한 나라들이 존재한다. 예를 들어 미국은 ADA(Americans with Disabilities Act)를 기반으로 공공시설 내 통신 장비—와이파이 포함—에 대해 시각·청각 장애인을 위한 음성·시각 동시 출력 시스템, 버튼 확대 옵션, 저시력자를 위한 고대비 디스플레이 구성 등을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 특히 뉴욕시는 지하철 및 공공장소 와이파이 시스템에 접근성 기술을 탑재하는 것을 모든 신규 프로젝트의 기본 조건으로 명문화하고 있다.

유럽연합 또한 ‘디지털 접근성 법(European Accessibility Act)’을 통해, 와이파이를 포함한 ICT 인프라의 보편적 설계(universal design) 기준을 법적으로 의무화했으며, 핀란드, 네덜란드 등은 장애인 이용 행태를 반영한 접속 시뮬레이션 테스트를 기반으로 AP 설치 지점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정책을 정교화하고 있다. 이러한 사례는 우리나라가 단순히 기술 보급률이나 설치 수량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이용의 품질과 형평성'에 방점을 둔 공공 와이파이 전략을 수립하는 데 유용한 참고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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